<Annie Hall O.S.T - sleepy lagoon>
<Diane Keaton - It Seems Like Old Times>
자유연상을 사랑한 영화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생각이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방치한다. 거리에 나가보면,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그곳에 나와 있는 매춘부들에게 가까이 접근해 이 여자 저 여자를 집적저리다가 되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나에게 있어서 생각이란 바로 매춘부를 집적거리는 것과 같다.”
매춘부라는 단어에 기분 나빠하지 말기를. 단어를 컵라면으로 바꿔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컵라면을 고르는 일에 긴장과 흥분이 고조될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행간의 핵심은 깊이에 함몰되지 않고 생각의 흐름을 유희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에서 저 생각으로 넘어가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사유의 강에 몸을 맡기겠다는 말이다. 자유연상에 대한 예찬이다.
영화 <애니 홀>도 이와 같다. 자유롭고 분방하다. 주인공 알비 싱어(우디 앨런 분)의 행동과 대사는 분주하고 산만하다. 정확하고 정연한 생각을 들려줄 마음은 애초에 없는 듯하다. 그저 머릿속에서 스쳐가는 짧은 단상들을 필터 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뱉어낸다. 그의 대사 속에는 그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사유의 도구들이 무차별, 쏟아져 나온다. 그라우초 막스부터 프로이트, 마샬 맥루한에 이르기까지(저명한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은 실제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한다, 것도 아주 재밌는 방식으로), 그는 마치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정신을 분석하듯이, 그렇게 말을 한다.
그래서 영화는 때로, 여주인공 애니 홀(다이앤 키튼 분)의 속마음에서 드러났듯, 잘난 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금세 안다. 잘나 보이기에 그는 너무 찌질하다. 지식인의 섬세함이 얼마나 밥맛 떨어지는 것인지,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그 찌질함 덕에 관객은 웃는다. 혹,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격 없는 친구와 나누는 연애에 관한 담소
<애니 홀>을 보는 건 우디 앨런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실제로 영화 중간 중간 쉬지 않고 관객과 눈을 마주친다. 눈을 마주치며, 자신을 끊임없이 해명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건 그의 일기를 읽고 있는 것과도 같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 애니와 함께했던 6개월간의 일기를 가감 없이 관객의 머릿속에 통째로 넣어주려 한다. 영화는 한 여자를 만나고 헤어질 때까지 일어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와의 대화는 실제로 즐겁다. 영화 속 그의 직업이 희극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솔직하다. 그는 연애를 시작할 때 생겨나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열정들, 그리고 익숙해지며 지쳐가는 그 모든 과정들의 베일을 가차 없이 벗겨낸다. 그와의 대화는 가까운 친구와 함께 나누는 담소이자 자신과의 대면이다. 격 없이 웃을 수 있고 기분 좋은 추억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러나 분주했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상한 쓸쓸함이 찾아온다. 분명 말 많고 사려 깊은 친구와 두서없는 수다를 나눈 듯한데, 그리고 우리는 그저 낄낄대며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카페 혹은 술집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는 길, 공연히 먼 산을 한 번 바라봐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때문인 듯하다.
애니와 오랜만에 재회한 알비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다시 헤어져야만 했죠. 애니를 다시 만나 기뻐요.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재밌었는지 깨달았죠.」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농담.
「어떤 사람이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죠.
'형이 미쳤어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왜 형을 데려오지 않났느냐고 묻자, 동생이 말했어요.
'그러면 형이 계란을 못 낳잖아요.'」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다
실없는 소리를 마친 그는, W 63th st, 센트럴 파크 어딘가로 걸어가며 다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재기 넘치는 내용과 대사는 물론, 신선한 형식들의 향연을 보여주는 영화, <애니 홀>은 결국 계란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랑을 한다는 건 일정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진짜로 닭이라고 생각할 만큼 미쳐버린다는 것이다. 사랑이란, 호르몬 과다분비가 만들어낸 비합리다. 사랑이 식는 다는 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들을 잃기도 한다. 그 배움과 소실의 반복에 지쳐, 그만 사랑하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쳐봤던 사람들만 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계란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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