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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꽁치의 맛>, 섬세하고 즐거우며 적막하고 애잔하다.




어떤 영화들은 삶의 비극적인 면들을 부각시킨다. 인생의 본질은 비극이니 발버둥치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대체로 차갑고 냉소적이다. 세상의 모든 상처를 떠안은 주인공이 등장해 우리의 고민을 아이들의 유치한 장난쯤 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제 자신은 그 고민들로부터 초탈해 삶의 한 단락을 마무리 짓듯 떠나버린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러나 영화 밖 우리의 일상이 어디 그렇던가. 한 인간의 생활은 그 보다는 훨씬 좁은 테두리 안에서 진행된다.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여전하지만 영화 같은 비극이 흔한 일은 아니다. 거대 담론이 쉼 없이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소소한 작은 이야기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오즈 야스지로는 이러한 일상에 천착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들은 소박하며 정갈하다. 정성스레 차렸지만 화려하지 않은 가정식 백반과 같다. 그의 한상차림엔 우리가 매일 같이 먹어야만 하는 갖가지 반찬들로 가득하다. 너무나 당연하여 그 맛마저 잊고 살게 되는 인생의 풍미가 담겨있다. 사람의 일상이란 이토록 아름다웠던 것인가.

 

현대 일본 서민의 삶에 대한 심상은 상당부분 그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의한 것이다. 우리도 그 이지미를 공유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생활인의 미학. 가령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돌아와 집 혹은 작은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 기울이며 가벼운 마음으로 찍는 그날의 마침표. 이 이미지는 그의 영화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행위 중 하나로 표현되고 있다. 취하지 않을 만큼 마시는 술 한 잔 속에 이리로도 저리로도 치우치지 않는 당신들의 삶이 깃들어 있다. 사실적이지만 날이 서있지 않으며 적나라하지도 않다.


하지만 한 잔 술에는 어느 정도의 비애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 비애의 본질은 이별이다. 어쨌든 사람은 이별하며 살아간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별의 목록은 늘어나게 돼있다. 우리의 일상엔 자기 몫의 이별을 껴안고 사는 사람들로 한 가득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잔잔한 생활의 물결엔 미약한 슬픔의 파장이 진동하고 있다.

 

너무나 평범하고 착하여 순간순간 70~80년대 공익광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가 남 다른 울림을 만들어 내는 건 바로 이 슬픔 때문이다. 이 슬픔이야 말로 오즈 야스지로 영화의 핵심이라 할만하다. 물론 그 슬픔이 수면위로 올라오는 법은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소탈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거장의 절제미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절제미란 대단한 것이다. 그는 절대로 자기 이야기에 취하지 않는다. 그의 미장센에는 유독 직선들이 많이 활용된다. 각각의 신에서 스스로 정한 선을 넘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보인다. 그래서 한정된 공간에서 그가 만들어 낸 미장센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일상을 보여준답시고 세상에 이미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모든 장면은 차라리 개별적인 하나의 그림이다. 풍경화보다는 정물화에 가깝다. 전자에는 작가가 의도치 않은 것들이 담길 수밖에 없는 반면 후자는 작가가 배치한 그대로의 세상이 그려진다. 그의 영화가 정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공들여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의미 있게 보여줘야 하므로 그의 영화는 어떤 이에겐 지루하다. 그러나 그 지루함은 우리 일상의 단면이다. 또한 그것은 관점을 바꾸면 그자체로 편안하고 한적한 무엇이다. 오즈 야스지로는 삶의 슬픔까지도 편안함의 일부로 편입시켜 영화 속 인물의 넋두리를 보며 미소 짓게 만든다. 그로인해 우리는 외로움마저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실로 영화 <꽁치의 맛>은 작위적이지 않은 일상의 아름다움의 집합체다. 당신의 삶이 어떠하든 웃을 수 있으면 웃을 수 있다. 영화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는 “말은 (대상을) 찬미할 수 있지만 재현할 수는 없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말과 글로 세상을 온전히 알고 표현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오히려 꽁치의 맛과 향이 가을을 보다 충실하게 재현한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에 가깝다. 오감을 통해 기억이 되살아 날 때 그 기억은 설명이 아니라 재현이 된다.


<꽁치의 맛>은 대부분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그렇듯, 일본인의 일상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일본인들의 삶 혹은 그들이 일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들을 알고 싶다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빠져든다기보다는 녹아드는 느낌으로 전후시대 그들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일상에 대단한 이야기가 찾아오는 시간은 드물다. 그것은 ‘꽁치의 맛’처럼 섬세하고 즐거우며 적막하고 애잔하다. 감독은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