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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호곡장 好哭場>





                                          <호곡장 好哭場>




연암 박지원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천고의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천하의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몇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을 

옷깃에 떨굴 정도였기에, 그들의 울음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서 쇠나 돌에서 나오는 듯 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다만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른다. 기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것.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이다. 

 

 지극한 정이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저절로 이치에 딱 맞는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의 감정이 이러한 극치를 겪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높고는 슬품에다 울음을 짝 지은 것일 뿐. 이 때문에 상을 당했을 때 처음엔 억지로 '아이고' 따위의 소리를 울부짖는다. 그러면서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소리는 억눌러 버리니 그것이 저 천지 사이에 서리고 엉기어 꽉 뭉쳐 있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가생은 울 곳을 얻지 못하고, 결국 참다 못해 별안간 선실을 향하여 한마디 길게 울부짖었다. 그러니 이를 듣는 사람들이 어찌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기 않았겠는가."


 정진사가 다시 물었다. 

 "이제 이 울음터가 저토록 넓으니, 저도 의당 선생과 함께 한번 통곡을 해야 되겠습니다그드려. 그런데 통곡하는 까닭을 칠정 중에서 고른다면 어딩 해당할까요?"


 "그건 갓난아기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 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 무슨 정인지. 그 애는 먼저 해와 달을 보고, 다음으로는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니 그 얼마나 기뻤겠는가. 이 같은 기뿜이 늙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면, 본래 슬퍼하고 노여워할 이치가 전혀 없이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도리어 분노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삶이란 성인이든 우매한 백성이든 누구나 죽게 마련이라고, 또 살아가는 동안에도 온갖 근심 걱정을 두루 겪어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음을 터뜨려서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 정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에는 캄캄하고 막혀서 갑갑하게 지내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나와서 손도 펴 보고 발도 펴 보니 마음이 참으로 시원했겠지. 어찌 참된 소리를 내어 자기 마음을 크게 한번 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저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소리를 본받아서,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장연의 금모래밭을 거닐면서 한바탕 울어볼만하다. 


 이제 요동벌판을 앞두고 있다. 여기부터 신해관까지 1,200리는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이 하늘 끝과 땅 끝이 맞닿아서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맨 듯하고, 예나 지금이나 비와 구름만이 아득할 뿐이야. 이 또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 열하일기 中 호곡장론(好哭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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