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가 시작되자 주위가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마음에선 어떤 감정이 한 움큼 고이다 사라지다를 반복했다. 노랫말이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는 회한처럼 가늘게 떨리는가 하면 확신처럼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그래서 더 쓸쓸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지난 2월, 데뷔 37년 만에 정미조가 신보를 내놨다. 앨범 제목은 '37년'. 타이틀곡은 '귀로'다. 귀로를 처음 듣고자 할 땐 이렇게 노래와 목소리에 마음을 뺐길 줄 몰랐다. 공백 기간이 내 나이보다 많은, 오래 전 가수인데도 창법이 상투적이지 않아 무엇보다 좋았다. 잘 다듬어진 가사도 좋았고 깊이 있게 떨리는 현의 배경도 귀를 사로잡았다. 가수의 세월과 목소리가 어우러져 이만한 작품이 나왔음이 분명하다. 이 노래는 당장 큰 주목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쉽게 사라질 곡은 아니리라.
앨범은 몇곡을 제외하고는 쓸쓸한 정서가 지배적이다. 비교적 밝은 선율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란 곡도 마찬가지. 가사는 지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듯 흘러가지만 화자는 어쩐지 그리움에 사무친다.
앨범엔 '개여울'이나 '휘파람을 부세요'처럼 기존에 발표했던 곡들도 수록돼 있다. 이 곡들 역시 정미조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가사를 감각적이라고 착각하는 요 근래 음악들과 비교하면 훨씬 더 사람의 마음을 사람답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다만 앨범의 상당수가 탱고 음악인데 개인적으론 가수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탱고는 정열적으로 휘몰아치면서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반면 정미조의 목소리는 은근하며 정직하다. 탱고 보다는 두번째달의 앨범
'Alice In Neverland'에 수록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같은 노래가 정미조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평가이며 내 몰취향의 소산일 수도 있음을 고백한다.
앨범엔 총 13곡이 수록돼 있으며 추천곡은 '개여울', '귀로', '미워하지 않아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